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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을까?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이 공개되자 격렬하게 반대.

여러 정황상 세종대왕님이 친히 창제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음.

창제 과정중에 세종대왕님의 자녀들(공주, 왕자)이 참여.


집현전은 훈민정음 창제 후 훈민정음 해례본에 참여.

이미 만들어진 28 글자에 대한 원리 해설.

그것도 세종의 지침과 확인을 받으면서.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 불쌍한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청에 인질로 끌려가 청에서 9년간 억류생활을 함.

청에 머물면서 청이 조선에 무리한 물자를 요구하면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등 청과 조선 사이에서 외교적인 수완을 잘 발휘함.

이 과정중에 청과 우호적 관계 유지.

그래서 국내 정치인들 그리고 유교적 명분을 강조하는 서인에 의해서 비판 받게 됨.


소현세자와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도 너무 불쌍하다.

인조는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가 청과 결탁해 인조 자신을 끌어내릴 거라는 소문을 믿고 아들을 죽이고,

(소현세자가 학질에 걸려서 나흘만에 죽었는데, 학질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이었다고.)

결국 인조(소현세자의 아저비)는 며느리, 손자까지 죽였다. 


인조의 밥상에 전복구이가 올라왔는데 거기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주모자로 강빈을 지목해서 강빈의 시녀들을 심문했으나 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신하들도 강빈의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는데도 인조는 고집을 꺾지 않고

강빈의 형제들에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주며 심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형제들은 심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강빈은 인조가 내린 사약을 마시고 죽고,

소현세자와 강빈의 두 아들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강빈의 친정 어머니 또한 죽임을 당했다고.


뭐..강빈의 가족들이 실제로 음모를 꾸며서 인조가 그렇게 한 걸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참...소현세자와 가족들이 너무 불쌍하다.


소현세자는 9년간의 인질 생활을 끝내고 조선에 귀국한지 2달만에 죽음을 당하고...

소현세자가 왕위를 이었으면 인조때 겪었던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됐을까.

불쌍한 조선 백성들. (이건 뭐..지금도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지만. ㅋ)

무능한 왕때문에...

선조와 더불어..참..에혀...



▷ 사도세자도 안타깝다.

장인이 사위 죽음에 한몫함..

노론이었던 장인.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가 왕위에 오를 때 결정적 역할을 했던 붕당이 노론이었다.

그래서 영조는 노론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이런 모습에 불만을 가지며,

노론과 상대적 대결구도에 있었던 소론쪽과 교류.

결국...당파 싸움의 피해로 죽음.

그 과정중에 노론이었던 사도세자의 장인 영의정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소극적 자세를 취함.


권력이 뭐길래.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거늘~





◈ 일제 강점기

▷ '을사조약'이란 단어보다는 '을사늑약'

조약: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짐

늑약: 강제로 맺어진 조약



▷ '천황'보다는 '일왕' 



▷ '한일합방조약'에서 '한일병합조약'을 지금 사용.

그러나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이 적절한 용어.


병탄: 남의 재물이나 다른나라의 영토를 한데 아울러서 제 것으로 만듦




-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못한 우리 역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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