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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4 뿌리깊은 나무 21회 


◈ 조말생대감 놀리기~ㅋㅋㅋ










◈  사죄하오
절대권력 임금이 고개숙여 사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ㄷㄷㄷ
역시 우리의 석규세종님~~~ㅠㅠ
사과하는 포스도 장난 아님~ㄷㄷㄷ


나의 아들 광평... 
정말..아직도 맘이 넘 아프다...ㅠㅠ 










◈ 황희정승 사직
사직이라니? 올핸 아직 올리지 않았네!
아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ㅋㅋㅋㅋㅋㅋㅋ 
역사적 사실을 깨알같이 잘 활용했어~ㅋㅋㅋ






실제로 황희 정승은 세종 12년간 사임을 요청했지만

세종이 사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종 53권,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9월 10일(신미)

               1번째기사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세종 56권,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4월 20일(무신) 

               3번째기사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세종 58권,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12월 7일(임진) 

               2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67권,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3월 29일(신축) 

               5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황희가 전을 올려 노쇠함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치 않다.


세종 72권, 1_8년(1436 병진 / 명 정통(正統) 1년) 6월 2일(정유) 

               1번째기사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83권,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1월 19일(기해) 

               2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을 청하니 허락치 않다.


세종 85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6월 11일(정해)

               2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세종 85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6월 12일(무자) 

               3번째기사 황희의 사직을 반대하다.


세종 91권,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12월 21일(경인) 

               1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황희가 자신의 파면을 아뢰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02권, 25년(1443 계해 / 명 정통(正統) 8년) 12월 4일(갑신) 

                 1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연로함을 이유로 해면을 청하나 듣지 않 다


문종 12권, 2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2월 8 일(임신) 

               1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황희의 졸기.







◈ 훈민정음 해례본




해례본이 2권이 있는데,
한권은 간송미술관이 소유.
다른 한권인 상주본은 안타깝게도...
소유주가 소유권 분쟁으로 낱장으로 뜯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놨다고.
진짜 나쁜놈이다.

이렇게 소중한 해례본을...찢어서 보관...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도 알수 없는 상태라고.
에혀...



지금 공개되는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구입한 해례본으로
간송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끔(?) 전시를 한다.

원본 봤을 때 정말 감동이었지...






훈민정음의 판본에는 크게 해례본(한문본), 언해본이 있고, 그밖에 예의본이 있습니다.

실록본도 있는데, 이는 예의본에 속합니다.

이 가운데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은 해례본입니다.

이 책들은 조선 초기에 세종대왕이 지은 책입니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전하지 않지만 한글을 반포할 무렵인 1446년 무렵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해례본 :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것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것 두 부가 존재합니다.

안동본은 표지 2장에 본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 20 센티미터, 세로 32.3센티미터 크기이고, 처

음 두 장이 망실되었습니다. 상주본은 2008년 8월 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세 장이 떨어져 나간 상태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언해본 : 훈민정음 언해본은 해례본의 한 종류이나 편의상 따로 언해본이라고 부릅니다.

언해본은 본디 한문(해례본/원본)으로 되어 있던 것이

1495년(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의 어제 서문과 예의(例義) 부분이

한글로 번역되어〈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으로 합본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상 언해본이라고 합니다.

 

예의본 : 해례(解例)와 예의(例義)가 모두 포함된 해례본에 대해,

예의 부분만 들어 있는 것을 예의본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예의본은 단행본이 아니라,

《세종실록》과 희방사판(喜方寺版) 《월인석보》에 실린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예의본 가운데 《세종실록》 등에 전해 내려오는 것을 실록본이라 부릅니다.

즉, 실록본은 여러 곳에 실린 예의본 중에 하나입니다.

 

이 책들의 의의 :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 예의본에서는 한글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며,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책입니다.

 

《해례본》에 있는 예의(例義)는 특히 창제 당시의 자체(字體)를 그대로 보이고 있어서

그 중 가장 높이 평가됩니다.

또한, 해례는 오랫동안 문제로 삼던 글자의 기원 등 여러 가지의 의문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의본》은 아주 간단하지만, 당시 나랏글을 만들고자 한 취지,

낱자의 발음, 글자를 만드는 원리에 대한 설명 등이 규정되어 있어서,

한글 연구를 위한 귀중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언해본》에서는 현대의 한글에서 쓰이지 않는 방점이라던지

어두 자음군 등이 나타나나 모음조화, 원순모음화, 두음법칙 등은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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