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 글자요? 아니, 전하. 백성이 글자를 배울 시간이 어딨습니까요?
뼈 빠지게 일해서 세금 낼 거 맞추는 데도 모자릅니다요, 시간이.
게다가 배울 이유는 또 뭐가 있습니까요? 글자가 쌀을 만들어 줍니까, 옷을 만들어 줍니까,
아니면 양반을 만들어 줍니까?
아 물론 양반은 글자를 알지요. 헌데 글자가 양반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백성은 말입니다, 글자를 몰라서도 억울하게 죽지만,
백성은 말입니다, 글자를 안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겁니다.
천 것은 맞아서도 죽지만 때려서도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니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힘이 없어서 억울해지는 것이지,
글자를 모른다고 억울해지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마치 글자를 알면 우리가 억울한 일 당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 속이지 마십시오
세종: 속이는 것이 아니니라!!
채윤: 속이는 것입니다!!!
세종: 글자를 알면은 백성도 힘이 생긴다! 밥이 나오지는 않지만 밥을 더 많이 만드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양반이 되지는 않지만 양반들에게 그렇게 힘없이 당하지만은 않는다.
채윤: 아니요. 힘은 안 생기고, 책임만 뒤집어 쓸겁니다, 백성은.
세종: 대체 왜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이야!!
채윤: 이것 때문입니다, 전하.
오늘 이 자리에 죽으러 온 것도, 전하 말이 우습게 들리는 것도 다 이것 때문입니다. 전하.
세종: 뭐냐 그게?
채윤: 우리 아버지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어가면서 저한테 남긴 유언입니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죄가 없다!!! 내 원수를 갚아다오!!!' 여기 이렇게 써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헌데 여기 써있는 건 말입니다.
'똘복아, 아버지가 글자를 몰라서 내가 반푼이라서, 모두에게 죄를 지었구나.
너는 꼭 글자를 배워 주인마님 잘 모시고 잘 살아라'
이렇게 엿같은 말이 어딨습니까?
이도: (등 돌림)
채윤: 자기가 왜 죽어가는 지도 모르고 죽어가면서, 자기 탓하고 글자 배워 주인마님 잘 모시랍니다.
전하!!! 이런 사람들이 글자를 배우면 힘이 생긴다구요?
전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은 전하께서도 속고 있는 겁니다, 백성들한테요.
여기에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왔냐 하셨죠? 예, 그랬습니다. 제가, 이 제가 다 졌으니까요.
헌데 말입니다, 절대로 전하한테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 그리고 저기 저 담이, 저 둘한테 진 겁니다.
복수를 하지 말라네요. 아버지랑 담이 모두 전하편이랍니다.
해서 죽기 아주 좋은 자리다 싶어서 예까지 왔는데, 그것도 제 맘대로 안 되네요, 이 빌어먹을.
전하, 제가 다 졌습니다.
(출처: 뿌나갤)